자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 네이버 게시판에 참으로 많군요
먼저 발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발해의 건국의 중심인물은 대조영을
비롯하여 고구려 장군출신 구대칠 장군과 평양 출신인 이문진과 곽영등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발해를 건국합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는 이주정책을 실시하여평양과 국내성등 고구려안에 있는 백성들을 조양으로 이주시킵니다. 그속엔 대조영도 있었습니다.
그후 당나라에 대항하여 거란인인 영주자사 이진충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어,대조영이 탈출할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게됩니다.이후 대조영은 조양에서부터 태자하를 넘어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을 지나 돈화에 도착하게 됩니다.이곳에서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하게 되는것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 만이었습니다.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대음은 고구려인 이었다는 기록이 당서에 나타나고
발해건국에 도움을 주었던 또한사람은 말갈족인 걸사비우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지배계층은 고구려인 이었고
피지배층은 고구려인과 말갈족이 혼합된 상태였습니다.
말갈족은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도 오랜세월동안 고구려에 속하여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서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서도 말갈족출신
들이 전쟁에도 고구려군으로 참여합니다.
발해의 제왕이 주변국에 보낸 외교문서에는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로써 고구려를 잇는 나라라고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고구려와 발해는 떨어놓고 생각할수 없는 위치인겁니다
처음 발해가 건국됐을 당시에 발해의 국호는 "진국"이었습니다.
그후 개국한지 12년만인 710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습니다.
당나라는 발해가 건국되고 7년뒤인 705년 발해의
고구려의 부흥을 인정한다는 사신을 보내욌습니다.
또한 신라고기와 제왕운기에도 대조영은 스스로 고구려의 장수라고
일컫는 기록이 나옵니다.
먼저 발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발해의 건국의 중심인물은 대조영을
비롯하여 고구려 장군출신 구대칠 장군과 평양 출신인 이문진과 곽영등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발해를 건국합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는 이주정책을 실시하여평양과 국내성등 고구려안에 있는 백성들을 조양으로 이주시킵니다. 그속엔 대조영도 있었습니다.
그후 당나라에 대항하여 거란인인 영주자사 이진충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어,대조영이 탈출할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게됩니다.이후 대조영은 조양에서부터 태자하를 넘어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을 지나 돈화에 도착하게 됩니다.이곳에서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하게 되는것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 만이었습니다.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대음은 고구려인 이었다는 기록이 당서에 나타나고
발해건국에 도움을 주었던 또한사람은 말갈족인 걸사비우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지배계층은 고구려인 이었고
피지배층은 고구려인과 말갈족이 혼합된 상태였습니다.
말갈족은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도 오랜세월동안 고구려에 속하여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서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서도 말갈족출신
들이 전쟁에도 고구려군으로 참여합니다.
발해의 제왕이 주변국에 보낸 외교문서에는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로써 고구려를 잇는 나라라고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고구려와 발해는 떨어놓고 생각할수 없는 위치인겁니다
처음 발해가 건국됐을 당시에 발해의 국호는 "진국"이었습니다.
그후 개국한지 12년만인 710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습니다.
당나라는 발해가 건국되고 7년뒤인 705년 발해의
고구려의 부흥을 인정한다는 사신을 보내욌습니다.
또한 신라고기와 제왕운기에도 대조영은 스스로 고구려의 장수라고
일컫는 기록이 나옵니다.